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릉 도굴 사건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도굴 소식이 전해지자 경진위수사령관 [[옌시산]]은 [[톈진]]경비사령관 [[푸쭤이]]를 파견하여 동릉을 보존하게 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하게 했다. 이후 [[쑨뎬잉]]의 부하 담온강이 체포되면서 범죄가 들통날 위기에 처한 쑨뎬잉은 [[옌시산]], 진군 총참모장 주수광, [[베이핑]] 시장 하기공, [[허베이성]] 정부주석 상진 등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면서 자신이 무죄라고 로비하였다. 이에 옌시산은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군대가 대규모 도굴을 저질렀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싫고 청나라도 그다지 좋지 않은 판에 담온강을 석방시켜 주었다. 하지만 [[청나라]] 조정과 유신들이 들고 일어나고 언론의 취재가 이어지면서 이 일은 정치 문제로 비화되었다. 결국 쑨뎬잉의 탈영병인 장기후가 [[칭다오]]에서 체포되어 자초지종을 고변하면서 쑨뎬잉과 부하들을 재판정에 서게 되었으나 막대한 뇌물을 사방에 뿌려서 도굴을 한게 아니라 사실 비적들이 도굴을 하고 남은 것을 주운 것이라고 얼렁뚱땅 넘어가게 되었다. 이 두 건의 도굴로 인해 청나라 황제였던 [[선통제]]는 국민당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어 등을 돌렸고 [[일본 제국|일본]]에 협조하여 [[1931년]] [[천진사변]]을 계기로 [[만주]]행을 택해 [[괴뢰국]]인 [[만주국]]의 황제가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